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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역 고가의 인문사회학적 의미

서울역고가와 서울의 삶

서울역고가와 서울의 삶 사진1
명물에서 흉물로, 해결책에서 골칫거리로

서울역고가가 서울의 삶에 자리한 방식은 무엇보다도 고가도로 일반과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. 그것은 두 시기로 나뉘는데, 우선 고가도로가 서울에 설치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은 근대화의 상징이자 도시문제의 해결책으로 자리 잡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미관을 저해하는 ‘흉물’이자 도시문제를 야기하는 ‘골칫거리’가 되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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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가도로가 교통난의 해결책이자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1960년대 말의 고가도로 건설 근거로 작용했던 관념들은 1980년대 들어 공공연히 의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. 1980년 교통문제연구원은 서울시내 10개소 고가도로를 검토한 뒤 고가도로가 교통의 소통을 돕기보다 영향을 주지 못하거나 아예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진단을 발표했다. 이 발표는 고가도로에 대한 기존의 주요 관념을 본격적으로 재고하는 초기의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.

1980년대 서울 고가도로 일반의 안전문제가 대두되고 1990년대 반복되는 안전진단과 대규모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고가도로는 더 이상 1960년대 말의 존재이유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. 고가도로는 이제 도시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도시문제 그 자체가 되어갔고 2000년대 들어 이명박 시장은 이와 같은 변모하는 고가도로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우려했다. 서울역고가 또한 서울 고가도로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법의 변천을 공유했다고 언급할 수 있다.

보이는 것이자 볼 수 있는 곳

서울역고가는 보이는 것으로서 한때 서울의 명물이자 근대화의 상징에서 이후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‘흉물’로 간주되기도 했지만, 또한 역사적 사건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.
  • 서울역고가와 서울의 삶 사진4
  • 서울역고가와 서울의 삶 사진5

여느 고가도로처럼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특정하게는 주요 역사적 사건을 보고, 담고, 혹은 그것에 참여하는 보행자들을 맞는 장소이기도 했다.
볼 수 있는 곳으로서 서울역고가에 특정한 역할은그 주변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 (‘IMF 경제위기’,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서울역집회 등) 을 보거나 기록하는(그리고 때로는 그것에 참여하는) 이들을 위한 장소였다는 점이다.

통하는 곳이자 잇는 것

서울역고가는 서울역 철로시설들로 인해 단절된 도심 및 남대문시장 일대와 서울역 서측지역 일대를 잇는 연결로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.
  • 서울역고가와 서울의 삶 사진6
  • 서울역고가와 서울의 삶 사진7

서울역 고가가 1970년에 중림동과 청파동 방향 램프가 완공되었고 1975년 만리재 방향 연장공사가 완공되었다는 점에서 이 추정은 그 산업 생태계에 서울역고가가 미친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. 이처럼 ‘잇는 것’으로서의 서울역고가는 오랫동안 만리동, 청파동, 서계동 일대 소규모 봉제공장과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음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.
서울역고가 재생 논의 속에서 제기된 이 지역 주민들의 우려는 서울역고가가 70-80년대 이후 서울의 삶 속에서 수행했던 두 지역을 잇는 역할,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공장과 시장을 잇는 산업적 유산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.